“자동차는 남자, 인형은 여자 장난감?”

▲ 경기 군포시의 한 대형마트의 완구 코너. 남아·여아를 구분한 코너명이 선명하다.

서울 광진구에 사는 직장맘 정모씨는 다섯 살배기 딸에게 줄 선물을 고르려 집 근처 대형마트 장난감 코너에 갔다가 당혹스런 장면을 목격한다. 진열대가 ‘남아 완구’ ‘여아 완구’로 구분돼 있던 것.

그는 “아이가 유난히 레고를 좋아해서 사주려고 했는데, 저렇게 큰 글씨로 남아 완구라고 떡하니 써 있으니 조금 당황스럽다. 심지어 ‘소녀 레고’라는 것이 따로 있더라. 딸이 ‘엄마, 레고는 남자 친구들만 가지고 노는 거야?’라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성별 구분보다 연령별 장난감으로 구분해 놓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 주요 대형마트에는 어김없이 완구 코너가 마련돼 있다. 한 대형마트의 완구코너 담당자는 “작은 점포는 남녀 구분이 없지만 장난감 진열대가 2개 이상 되는 큰 상점은 대부분 남녀로 구분해 진열한다. 고객들이 남자아이, 여자아이 장난감을 구별해 찾으시기 때문이다. 보통 자동차나 로봇, 공은 남아용으로, 소꿉놀이나 봉제인형은 여아용이다”고 전했다.
아이들은 장난감과 놀이를 통해 자신의 성차에 따른 성역할에 눈을 뜬다. 유아기 시절 남아와 여아의 놀이는 매우 유사하지만, 만 2~3세만 돼도 성 유형화된 장난감을 선호한다는 많은 연구 결과들을 봐도 이는 분명하다. 젠더 아이덴티티(사회적 성 정체성)가 형성되는 18개월 전후부터 젠더 롤(역할)이 형성되는 만 3세까지의 아이들의 장난감 선택이 중요한 이유다.

남성성이나 여성성은 상당 부분 문화적 구성물이며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상대적인 것이고, 이런 맥락에서 아이들의 놀이와 장난감에 대한 선택은 아이들의 본성에 따라 선택된 것이 아니라 어른들의 기대와 요구와 지시에 따라 강요된 것이다. 남아와 여아의 장난감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남녀 성향에 대한 어른들의 고정관념이다. 어릴 때부터 굳이 남녀 차별적인 역할을 아이에게 심어줄 필요는 없다.

장난감은 커서 아이들이 맡게 될 일반적 성역할을 반영한다. 그런데 이렇게 ‘그건 남자 장난감이야’ ‘그건 여자 장난감이야’라는 판단은 아이들이 아니라 어른에 의해 내려진다. 어린이 품성과 두뇌 발달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장난감을 가지고 아이에게 어떤 방식으로 젠더 롤(성역할)을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해 고심하는 부모도 많다.

4살 아들을 둔 싱글 대디 김효연(경기 이천시)씨는 “아이가 요즘 소꿉놀이에 푹 빠져 있다. 냄비나 프라이팬, 국자 같은 부엌에서 쓰는 도구를 갖고 노는 걸 재미있어 하는 것 같아 아예 소꿉놀이 세트를 하나 사줄까 했지만, 함께 사는 부모님이 질색하실 것 같아 못 사주고 있다”는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장난감에서 여자와 남자의 구분을 없애다 보면 성에 대한 편견을 없앨 수 있는 것은 물론, 성역할이나 미래의 직업 선택에 있어서도 보다 폭넓게 사고할 수 있다. 따라서 아이에게 병원놀이나 식당놀이, 목공놀이 등 직업과 관련된 다양한 놀이를 할 수 있는 장난감을 사주는 것이 좋다.

최태영 대구가톨릭대 소아정신과 교수는 “부모들의 성역할 고정관념과 가치관에 따른 장난감 선택, 보상과 처벌이라는 이중적 잣대에 대한 아이들의 잦은 체험은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만든다. 어릴 때 생긴 이런 고정관념은 유치원 교실뿐만 아니라 미래의 교육이나 직업 선택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성차나 성역할의 구분 없이 남녀 아이들이 좋아하는 반대편의 놀이를 적극적으로 만나게 해줄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